한달 절주하고 내 몸에 나타난 변화

기사입력 2017-11-29 13:42:59

| 술꾼 여기자의 한달 절주 체험기 2


오랜만에 만난 업계관계자들과의 첫 인사는 늘 상대의 외모 변화에 대한 것이다.


"살 쪘네!"

"어이구, 이번 곡 대박나더니 귀티가 좔좔 흘러!"


뭐, 그런 말들. 나는 그런데 거의 늘 비슷한 말을 듣는다.


"누나, 어제도 달렸어?"

"이 기자님, 해장해야겠는데?"

"어디 아파요? 얼굴이 왜 이래."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문제는 전날 밤 건강식을 먹고 8시간 푹 숙면을 취한 적도 많다는 것이다. 나는 술을 안먹고도 이 얼굴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프거나 늙은 게 아니라 잠시 컨디션이 안좋은 거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과음한 척을 하곤 했다.


그런데 첫 인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 3회 음주, 주 1회 과음' 일정을 '주 1회 음주 격주 1회 과음' 정도로 줄이자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선배, 피부에 피가 좀 도는 거 같아요!"

"네 얼굴 안 부은 거 처음 봤어!"


역시, 칭찬은 나도 절주하게 만든다.


11월 13일 : 절주 수칙 다섯가지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 이사가 있었다.


이사하는 날은 왠지 다같이 둘러모여 짜장면에 고량주 한잔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이내 오홍석 성남시알코올상담센터장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뇌는 점차 더 많은 알코올을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술이 꼭 필요하다'고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술을 원해서 음주를 합리화하는 자신의 뇌한테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래, 이사하는 날 반드시 술을 먹어야 한다는 법칙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다들 수고했어!"하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아직 내 책상이 없다..)


저녁엔 정말 오랜만에 선배를 만나는 일정이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내 인생 전부를 다 합쳐 내가 혼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날 혼내셨던 분, 그러나 정작 본인은 기억을 못하시는 분 ㅋㅋ


사랑하고 존경하는 내 생애 첫 사수와의 술자리라면 응당 취해야 할 것 같아 긴장을 했는데, 의외로 맥주 한잔으로도 자리가 꽤 즐겁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의 자리라면, 술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


맥주 한 모금에 차돌박이 한 점. 맥주 한 모금에 차돌박이 한 점. 절주 수칙이 이제 몸에 좀 익숙해지는 걸까?


(이 장면의 실제 모델이심 ㅎㅎ)


절주 수칙 5


1. 술자리는 되도록 피한다.

- 이사 뒤풀이를 하지 않았다!

2. 남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 내가 강요 안하니 아무도 하지 않았다!

3. 원샷을 하지 않는다.

- 한번에 한 모금!

4. 폭탄주를 마시지 않는다.

- 맥주만 마셨다!

5. 음주 후 3일은 금주한다.

- 주 2회 이상 음주는 해롭다고 한다. 다음 술약속을 16일로 잡았다!



11월 15일 : 피부가 좋아졌다고?!


오늘은 스타일에이드에서 필라테스 동작을 소개하는 날이다.


술 마신 다음 날, 조금이라도 빨리 술 기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 호기심에 따라가봤다가, 지옥을 맛봤다.


포인트는 땀을 빨리 빼는 게 좋다는 거. 땀이 날 때까지 두발을 번갈아 콩콩 뛰라고 하는데, 잠깐만 따라해도 가슴이 너무 뛴다.


흉곽을 확장해 독소를 빼주는 동작도 좋다는데, 난 흉곽은 그대로고 팔만 휘니 문제...



술 마신 다음날 책상에 엎드려 하면 좋은 동작. (자는 거 아님)



(살려주세요)


그래도 후배들이 내 피부 변화를 캐치하고 한마디씩 칭찬을 해줬다.


"선배, 몸이 너무 뻣뻣해서 사진이 다 똑같아요. 그런데 피부는 진짜 맑아졌어요!"


너무 신이 난 나는 오전 11시에 돼지갈비 파티를 벌이고....


(맥주 대신 사이다를 시키는 의.지.)


원래의 나였다면, 돼지갈비에 맥주를 곁들이고 또 괜히 신나서 근처에서 멀쩡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불러다 낮술 파티를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깔끔하게 고기만 먹고 일어나 오후 내내 각종 회의와 미팅, 잡무들을 일사천리로 촥촥 진행했다. 덕분에 앞으로 이틀간 외부 업무만 봐도 될 것 같다. 신난다!



11월 16일 : 1차만! 가능할까


위기의 날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낮술 약속이 잡혔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티타임 미팅이었는데, "어느 커피숍으로 할까" 하는 상대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곰탕집을 말해버렸다.


오후 2시에 까르보나라 한접시를 비우고 5시에 곰탕집에 가는 게 '끼니' 때문은 아닌 게 자명하지만 이미 늦었다. 곰탕이 벌써 눈 앞에 어른거리니까.


오늘의 미팅 상대는 건강 상의 문제로 세달째 절주 중이신 분이다.


"신체 건강을 찾고 정신 건강을 잃었어. 저녁인데 집에 들어가앉아있으니,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거 같아. 내 라이벌들은 술자리 쏘다니며 비지니스 불태우고 있을텐데!"


하이파이브!


내 말이 바로 그 말. 이렇게 의견이 합치할 땐 원샷을 해줘야하는데!!


소주잔을 집어 목구멍에 왈칵 부으려다 멈춘다. 그래도 원샷은 참아야지. 이 의지를 담기 위해 사진 한장 찍어두고, 지인한테 자랑도 했다. 그는 이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소주가 반잔만 채워져있다니, 그건 반만 마셨거나 반만 따랐거나 했다는 뜻인데 그건 네 잔이 아니라는 뜻이지!"


흥.


(반만 마시고 내려놓은 소주잔이 포인트.)


Tip

원샷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급격히 증가시켜서 사고의 위험을 높인다고 합니다!


절주 수칙 5


1. 술자리는 되도록 피한다.

- 커피 약속을 술 약속으로 만들어버렸다. 반성.

2. 남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 건강을 주제로 얘기하니 서로 절주가 가능했다.

3. 원샷을 하지 않는다.

- 목을 탁 꺾다가 스탑!

4. 폭탄주를 마시지 않는다.

- 소주만 마셨다!

5. 음주 후 3일은 금주한다.

- 최근 저녁 약속은 모두 떡볶이, 파스타, 태국 음식.. 소주의 출현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11월 18일 : 감기몸살의 습격


전날 사무실 가구들을 사러 쇼핑몰에 다녀왔는데, 저녁 자리에서 그 좋아하던 소주를 앞에 두고도 "집에 가서 눕고 싶다"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앓아누웠다.


감기 몸살에 온갖 잔병들이 겹쳐서, 오전 시간을 꼬박 병원 투어에 매진하고 나니 새삼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다. 쇼핑몰 몇바퀴 돌았다고 몸살이라니.. 아아....


나는 거의 모든 약속을 또 취소했다. 내 지인들의 레퍼토리는 내가 더 잘 아니까.


"속이 아파? 자, 소주로 소독해."

"감기야? 자, 소주에 고춧가루."

"안 아픈 데가 없어? 자, 한잔 마시고 잊어버려."


취소하고 나니 좀 뿌듯하다. 나, 내 몸 잘 챙기고 있는데?


(살겠다고 평소 먹고 있는 영양제들)


그런데 위기는 엉뚱한 데서 찾아왔다. 이불을 둘러쓰고 할 일이 TV보기 밖에 없거늘, TV 속에서는 여기도 술, 저기도 술이다. 내가 음주 장면만 찾아보고 있는건가?


아니다. 퇴근 후에 만취, 애인과 헤어져서 만취, 친구들과 만취, 안주가 맛있어서 만취, 술 얘기가 가득하다. 그래, 남들도 다 저렇지 뭐, 생각이 드는 순간.


잠깐, 이건 위험한데?


음주 장면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아야 한다는 미디어 속 음주 장면 가이드가 최근 발표됐는데, 앞으로 변화가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11월 23일 : 절주의 효율성


감기약과 소주를 한번에 털어넣었던 적이 많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약 효과가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부작용으로 쇼크가 올 수도 있었다는데.


나는 퇴근 후 술자리에 가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 책도 보고, 커피숍에서 수다도 떨고, 잡무들도 후딱 해치운다.


세상에서 고립되는 느낌은 많이 줄었다. 다음날 아침, 상쾌하게 일을 처리하다보니 하루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오후 서너시만 돼도 내가 일을 엄청 많이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니 택시비도 아꼈다.


월 20회 늦은 귀가 = 20X15000원 = 30만원

늦잠, 숙취로 인한 택시 출근 = 10X15000원 = 15만원


여기에 외부 미팅 갈때까지 어질어질해서 추가한 택시비 3~5000원 수차례까지 더 하면 총 50만원은 거뜬.


그러나 이달에는 달랐다.


월 10회 늦은 귀가 = 10X15000원 = 15만원

아침 출근 택시비 = 1X15000원 =1만5천원

이것 저것 다 해도 2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택시비만 다 모았어도 빌딩을 샀을 거라고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해왔지만 막상 이렇게 택시비가 진짜 '모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후회막심이다.


(지난 7월 술 마셔서 탄 택시비와 술이 안깨서 탄 택시비 내역.)


11월 25일 : 폭발하는 식욕


필름이 끊길 정도의 과음이 있었던 게 좀 걸리지만, 전체적인 음주일은 대폭 낮췄던 지난 한달이다.


지난 4주동안 술자리 7번! 그 중 소주 5잔 이상 마신 건 3번이었다!! (물론 그 중 2번은 2병을 넘어간 것으로 예상되지만..)


원래 4주면 술자리 16번에 소주 5잔 이상 마시는 게 10번은 넘었겠지만 확실히 절주는 해낸 것이다!


그와 함께 나는 드디어 "아파보인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고 대학 시절 이후 최초로 "피부에 혈색이 돈다"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한가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식욕의 귀환이다.


(술 안시키는 대신 고기를 '특'으로 시켰다..)


술자리에 안가면 안주를 안먹을 것이고, 그러면 먹는 양이 줄 것이라는 내 기대는 안일했다. 평소 즐겨먹던 곱창, 낙곱새, 곱창전골, 곱창꼬치를(곱창만이 내 행복) 안먹으니까 하루종일 허기에 시달리게 되는 거다.


그래서 과자, 빵을 무지하게 먹고, 밥도 한 그릇 두 그릇 뚝딱이 흔한 일이 되고 말았다. 커피숍에선 늘 탄산수를 시켰는데 이달 한달동안은 달달한 핫초코만 찾아댔다.


술을 시키고픈 식당에서는 술 생각을 버리려 밥에만 집중하다보니 오늘은 친구 몰래 바지 단추를 풀고 퇴장해야 하는 일마저. (못.. 봤겠지?)


그러나 술 마시느라 정작 끼니는 자주 건너뛰던 때와 비교하면 위장이 매우 튼튼해졌다고 볼 수 있다. 위장약도 안먹었는데 속이 쓰리지도 않다. 내 소화력에 새삼 감탄하는 나날들이다.


이제 술 약속 폭발하는 12월이다.


11월 한달간의 절주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배운 사항 몇개만 명심하면 그래도 건강한 12월이 될 것 같다.


1. 첫째잔부터 폭탄주는 금물.

2. 파도는 다같이 민폐.

3. 원샷은 뜨거운 작별 인사 의미로 막잔만 살짝.


모두 건강 지키고 소중한 사람들도 지키는 따뜻한 연말연시가 되길. ^^




본 기사는 보건복지부의 음주폐해예방 캠페인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사진=최지연 기자,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스틸컷, 보건복지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By. 이혜린 편집장




이혜린기자 rinny@news-a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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