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사는 이박사다…숨겨진 한류의 레전드

기사입력 2012-10-11 13:25:52

  "원숭이 나무 위에 올라가 꼬리를 흔들며 앉아서…"

  '몽키매직'의 이박사가 디지털 싱글 '레알 뽕짝커'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활동했던 '미미 시스터즈', 5인조 레게·소울 밴드 '윈디시티', 해금소녀로 잘 알려진 국악 퓨전 크로스오버 대표주자 '박지은' 등의 뮤지션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대표곡 '아수라 발발타'는 최근 트렌드인 셔플댄스 리듬을 적절히 가미한 테크노풍 사운드에 동양의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해금 연주를 더해 이박사만의 친근하고 중독성 있는 음악을 완성하고 있다.

  12년 전 이박사의 등장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고급스러움을 자처하는 대중음악이 난무하는 가운데,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뽕짝'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아 대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이박사는 89년 발표한 데뷔앨범 '신바람 이박사 메들리' 1집 하나로 180만 장을 판매했고, 그해 연달아 내놓은 1~5집을 다 합하면 400만 장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신승훈의 1집 앨범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140만 장을 판매하며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는데, 공식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1년 앞서 이박사가 이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특히, 이박사는 일본 소니 뮤직으로 스카우트돼 '스페이스 환타지', '몽키매직', '영맨' 등을 히트시키며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장본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이박사의 일본 인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박사는 혐한의 대표적인 사이트로 알려진 2채널과 니코니코동화에서 유일하게 까방권(까임 방지권의 준말)을 가지고 있는, 인정받은 한국의 가수다.

  이박사의 일본 활약에 대해 고개가 끄떡여지면서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지 않는가? 지금부터 이박사와의 따끈따끈한 인터뷰를 시작한다.

 

(인터뷰 당시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존칭과 비존칭을 섞어 쓰는 이박사의 말투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프로필>

        이름 : 이박사 (본명 : 이용석)
        직업 : 가수
        생년월일 : 1954년 10월 5일
        데뷔 : 1989년 신바람 이박사

        앨범(한국)
        2012년 레알 뽕짝커
        
2011년 야야야3
        
2009년 야야야
        
2006년 이박사 하이웨이 랩 댄싱
        
2005년 신바람 2PAK4
        
2003년 Epaksa 캐롤
        
2003년 스페이스 환타지
        
2003년 E-PAK-SA 003
        2001년 PON-CHAK 레볼루션
        2000년 E-PAK-SA 스페이스 환타지
        
1993년 서울깜빡이
        1990년 아싸 좋아 1, 2, 3
        
1990년 굿거리 장단
        
1990년 유행가 뽕짝
        1989년 신바람 이박사 1, 2, 3

        앨범(일본)
          1997년 나는 우주의 환타지
          1996년 영맨 (싱글)
          1996년 I LOVE FIFA WORLD CUP (싱글)
          1996년 이박사의 뽕짝으로 키가 5cm 자랐다!
          1996년 이박사 VS 덴키 그루브의 "열러라! 뽕짝!"
          1996년 뽕짝 대백과

        DVD
          2004년 이박사의 80일간 세계 일주

        도서
          2001년 신바람 이박사 한번 만나볼까요?

 

- 안녕하세요,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 입니다.

  반갑습니다. 신바람 이박사입니다.

 

- 공식질문입니다. 디시인사이드 아시나요?

  첨 들어봐.

 

- 최근 앨범에 '멘붕', '헐'이란 단어가 들어 있어 디시를 아시나 했어요.

  응~

 

- 이박사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줬나요?

  팬들이 만들어줬지. 가요도 좋아하고 민요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다 좋아하니까 "그러면 '신바람 이박사'로 해주자" 그래서 89년 데뷔 앨범이 신바람 이박사로 나온 거예요. 관광가이드 할 때는 '신 나는 이군', '노래하는 이군'이었다가 음반 발표할 때 '신바람 이박사'로 된 거지.


<이박사 '레알 뽕짝커' 앨범 표지>

- '레알 뽕짝커' 새 앨범 낸 지가 1개월 좀 넘으셨죠? 반응이 어떠신 것 같아요?

  글쎄, 생각보다 좀 빨리 와요.

 

- 어떤 면에서요?

  가사가 재미있고, 내가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지 신세대들이 많이 좋아해요. 근데 중년들은 아직 잘 못 알아들어요. '아수라 발발타'는 뜻도 모르고. 근데 신세대들은 요새 쓰는 말들이 많이 나오니까, 빨리 어필이 돼요. 신비로운가 봐요. 남이 안 하는 장르를 하니까. 제가 그걸 무대에서 많이 느껴요.

 

- 이번 앨범은 신세대 취향에 맞춰 곡을 만드셨군요?

  예.

 

- 그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셨던 건가요?

  그 전에 '야야야'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야야야'는 무대에서 부르면 신세대들의 반응이 더 빨라. '아, 신세대에게 더 다가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지. 그런 찰나에 요즘 최고 잘 나가는 싸이가 나와서 다행히 나도 그 덕을 보는 것 같아. 단독으로 나오는 것보다 앞에 좋은 사람이 나오니까 나한테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래도 중년 팬층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10년 만에 나왔으니까, 그 전에 팬들은 다 시집 장가갔겠지 뭐. 그래도 다행히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들이 내 10년 전 히트송을 알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요. 지금도 나를 알아 보는 사람들은 서른이 다들 넘었고, 서른셋에서 넷 정도 돼야 나를 아는 데, 학생들이 '어, 이박사 님!' 이러면 대단한 일이란 말이에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 공백 기간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디시이용자 '▶쵸파주인◀')

  2001년쯤 '몽키매직', '영맨', '스페이스 환타지', '달고나' 등이 나와서 활동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3년 동안 집에 있었어요. 3년 동안 집에서 치료하면서 음악 공부를 했죠. 그동안 7곡을 작사·작곡해서 '야야야3' 앨범이 지난해 봄에 나왔어요. '야야야3' 1절은 신세대 취향에 맞추고, 2절은 중년 쪽에 맞췄는데 다가오는 건 신세대가 더 다가와. 그래서 갑자기 '아수라 발발타'를 만들게 된 거죠. 그러니까 12년만에 나온 거야. 그동안 가정 실패도 좀 있었고, 있는 돈도 많이 까먹고 음악 공부도 하고… 잃은 거와 얻은 게 있었죠.

 

- 아드님하고 두 분이 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18년 동안 산 아내랑 헤어지고 두 번째 아내를 맞았는데, 또 11년 살다가 이혼했지. 지금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하고 둘이서 살고 있어.

 

- 근데 다리를 어떻게 다치셨길래 3년 동안이나 치료를 하셨나요?

  3층 집에서 살았는데, 장미꽃이 너무 많이 피었길래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사슴처럼 가위로 다듬었어. 근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니까 당황하게 되더라고. 위에서 보니까 한 1미터 밖에 안 돼 보여서 그냥 점프를 했지. 실제로는 7미터 이상 됐는데. 이때 왼발이 잘못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다리가 으스러져 버렸어. 그래서 매니저에게 시켜서 언론에는 외국 공연 갔다고 알리고, 병원에서 치료받았지. 근데 금방 안 낫더라고. 1년 만에 회복된 것 같은데. 비가 오니까 또 쑤셔. 그래서 집에서 운동을 한 거야. 그게 한 3년 이상 걸렸어.

 

- 새 앨범의 타이틀 '레알 뽕짝커'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나요?

  '레알'이라는 건 '진정' '진짜', 그리고 '뽕짝커'는 뭘 하든지 뽕짝스타일로 한다. 트로트도 뽕짝, 테크노도 뽕짝, 지루박도 뽕짝. 다 뽕짝 스타일로 하니까 락커를 부르듯 '뽕짝커인 거야. 그래서 '레알 뽕짝커'가 된 거지. 내용이 간단해요. 어려운 거 없어요.


<'아수라 발발타' 뮤직비디오. 출처 = 이박사 유튜브 공식 채널>

- 뽕짝으로 모든 음악 장르를 소화하는 '진짜 뽕짝가수'군요.

  그렇지. '쿵작쿵작' 뭐든지 네 박자로 나가니까.

 

- 이번 앨범에는 3곡만 들어 있네요? 전에는 민요와 전통 가요를 많이 섞어서 내셨는데.

  그때는 그랬죠. 가요, 민요 섞어서 보통 50곡씩 했지. 89년도에는 앨범 하나에 30곡씩 5집을 냈으니까 한꺼번에 150곡을 낸 거지. 근데 그게 다 떴어요. 89년 얘기예요. 그때 관광메들리 신바람 이박사였고, 이후로 나온 게 몽땅 29집 정도 되는 것 같아. 이번 음반이 아마 10번째일꺼야.

 

- 일본에서 발매한 것까지 포함해서요?

  우리나라에서 낸 거 일본에서 낸 거 모두다. 일본에서 내가 5집인가 냈거든요. 싱글까지 해서 아마 7집까지 냈을 거예요. 그러면 다해서 10번이 넘겠구나. 그리고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쉽게 다운로드해서 들을 수 있으니까. 음질도 좋고. CD는 홍보용으로만 만들었어. 그리고 노래를 여러 곡 내는 것보다 두세 곡만 해서 잘 되면 다음 노래 또 만드는 거지.


<미미시스터즈, 박지은, 윈디시티. 출처 = KBS2, 2집앨범, 공식홈페이지>

- 이번 앨범에 '미미 시스터즈', 4인조 레게 밴드 '윈디시티', 해금소녀 '박지은' 씨가 참여했던데, 어떤 인연으로 만나신 거예요?

  기타, 피아노보다 남이 잘 안 쓰는 해금을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금 소리가 은은한 게 정감이 있잖아요. '아수라 발발타(새 앨범 첫 번째 트랙)'의 비트는 빠르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해금 소리가 좋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 해금소녀가 노래도 잘해서 공연할 때 가끔 나를 도와주기도 해요.

  미미 시스터즈는 나하고 스타일이 비슷해. 보니까 사람들이 특별해서 같이 작업하니까 재미있더라고. 캐릭터가 확 살아. 나하고 잘 맞아.(두 번째 트랙 '다른 오빠')

  진짜 잘 맞는 건 윈디시티야. 그 친구들은 토인들이 하는 레게 음악을 하더라고. '스페이스 몽키(세 번째 트랙)'도 걔들이 편곡했어. 우리나라는 '쿵쿵탁탁 쿵쿵탁탁' 하는데 걔들은 '두두따다 두두따' 하는 4분의 3박자 절름발이 음악이란 말이에요. 토인 음악은 한 박자씩 끌어가면서 춤을 추는 거지. 우리나라는 정박자라면 토인들은 앞으로 나가는 듯 안 나가면서 제자리걸음이야. 그런 레게 음악을 만들었더라고.

 

- 음악은 이박사 님 마음에 드세요?

  그럼요. 앨범 내고 공연하니까 반응이 좋더라고요.

 

- 공연하실 때 '아수라 발발타', '다른 오빠', '스페이스 몽키' 다 부르시는 편인가요?

  아직은 '아수라 발발타'하고 중년들이 좋아하는 '야야야' 그리고 '몽키매직'을 해요. 앵콜 나오면 '영맨'도 하고, 가끔 민요 메들리도 해요.

 

- 앨범 만드시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신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가사.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중년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없을까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근데 아직은 공연장에서 중년들이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내가 공연장에서 접한 신세대들은 다 좋다고 그래. 정말 재미있다고. 방송국 PD와 작가도 다 좋아해. 끝내준다는 거야. 이러면 희망이 생기지. 그런데 공연장에 가면 중년들은 잘 못 알아들으니까 또 맥 빠지고. 지금 막 왔다갔다한다니까.

 

- 그럼 어떡하나요?

  그게 좀 헷갈려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그때는 민요 메들리를 부르셔야겠네요. (웃음)

  그러게. (웃음)

- 가사 쓰실 때 영감을 어디서 받으세요? (디시이용자 '김박사')

  인생이지 인생. 살아온 인생에서.

 

- '아수라 발발타' 가사를 보니까 "술 담배 여자 도박 다 끊어버렸어', '전 재산 땡전 한 푼 다 걸어버렸어" 이런 구절이 있는데, 이것도 이박사 님의 이야기세요?

  그렇지. 술은 이제 한 잔밖에 안 마시고, 담배는 (하루에) 세갑씩 태웠는데 지금은 냉정하게 끊어 버렸어.

 

- 술, 담배는 왜 끊으셨어요?

  이제 정말 발악을 하는 거지, 승부를 걸어야겠다 그런 내용이야.

 

- '다른 오빠'에서도 "나홀로 남았을 때 허전하지", "오빠오빠 할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 와서 갑자기 아저씨라니"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것도 경험담이에요?

  옛날에 '몽키매직', '영맨' 나왔을 때는 (팬들이) "이박사! 이박사!" 이러면서 쫓아다니고 그랬는데, 세월이 10년이나 흐르고 나니까 나를 찾던 팬들, 신세대들이 이제는 결혼해서 애를 업고 와서 "아우, 이제는 아저씨네요"이러는 거야. (웃음)

 

- 저는 이박사 님의 실제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응, 그러니까 (팬들이) 쫓아다니면 나는 착각을 했던 거야. '오빠'라면서 좋다고 그러더니 이제는 '아저씨'라고 그러니까 허무한 거지.

 

- 이번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했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맞나요?

  아니에요. 매니저가 해왔어요. 친분 있는 작곡자하고 매니저가 서로 의논해서 만들어 왔어요. 그 사람들이 나에게 맞춰서 노래를 만들어 온 거죠. 어떻게 보면 젊은 사람들이 불러야 할 노래인데 나하고 맞아떨어져서 다행이었어요. 특이한 목소리로 '멘붕↑' 이렇게 해야 하는데 '멘붕↓' 이러면 좀 이상하잖아. 그런 걸 좀 고생을 했어요.

 

- 노래에 포함된 특유의 추임새가 '이박사 앨범이구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런 추임새들은 계획해서 넣나요?

  이건 내가 즉석에서 한 거야. 계획에는 없는 거지. "이게 뭔 소리야", "잘 되라는 뜻이로구나" 이런 거. 78년도부터 관광가이드 하면서 몸에 배어 있던 걸 그대로 한 거야.

 

- 프로듀싱 해주시는 분은 그런 애드리브에 대해서 뭐라고 안 하나요?

  오히려 더 넣고 싶어해. 가수들이 노래는 기본적으로 다 부르지만, 이런 추임새는 없잖아. 그래서인지 나한테서 끝내주게 잘 부르는 노래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런 추임새를 통해 아쉬움, 욕망, 즐거움을 찾더라고. 근데 추임새가 너무 많이 들어갔길래, 내가 빼라고 해서 많이 뺀 거예요.

- 오늘도 머리에 '형광 노랑색'으로 물들이고 오셨네요?

  이제 가을이 오면서 나뭇잎에 단풍이 들잖아.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 이런 패션이나 코디를 해주시는 분이 따로 있나요? (디시이용자 '오하영')

  내가 다해요. 내가 디자인 출신이라서. 그래서 의상은 누구 코치를 안 받아요.

 

- 디자인 출신이요?

  어려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기술을 배웠어요. 나는 정장, 신랑 예복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어요. 신사복이라고 해야지. 직접 감을 떼다가 재단까지 해서 내가 옷을 직접 만들었어요.

 

- 양복 집 같은 옷 가게도 운영하셨나요?

  했어요. 3번 했다가 다 망했어요. (웃음)

 

-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이스크림 장사도 했고, 이발소도 다녀 봤고, 구두닦이도 해봤고, 중국집 배달도 해봤고, 그리고 요정이라고 하지? 요정에서 20명 정도 데리고 경기 민요를 가르쳐도 봤고. 또 관광가이드도 해봤지.

 

- 어떤 직업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관광가이드지. 그걸 한 11년 했으니까. 근데 힘들지. 아쉬우면서도 힘들었어요. 옛날에는 서울서 부산 가면 한 9시간 가니까 무척 고된 일이야. 관광가이드 시절에는 손님들을 모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기도 했는데, 차 타고 엄청나게 왔다갔다해야 하니까 몸이 힘들어. 원래 하루 갔다 오면 쉬어야 하는데, 성수기 때는 한 달 내내 다닌단 말이야. 아침 5시에 나갔다가 새벽 2시에 들어오고. 매일 그랬어.

 

- 희미하게나마 관광가이드 하시던 분들이 생각나는데, 요즘에는 거의 없어졌죠?

  그렇죠. 지금은 관광을 개인적으로 많이 가니까. 옛날에는 관광버스가 가야만 사람들이 관광을 다닐 수 있었잖아요. 자가용 시대가 되면서 없어진 것 같아요.

 

- 이박사 님이 그만두실 때도 사양 직업에 속했나요?

  그럼요. 그래서 손 뗀 거예요. 그게 89년도의 얘기죠.


<캡처 = Mnet>

- 89년도에 데뷔를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관광가이드 하고 있는데 89년도에 모 음반회사에서 앨범 하나 내준다길래, '좋다! 하자' '어떤식으로 했으면 좋겠냐?' '내가 하던식 그대로 하자' 이렇게 해서 관광가이드 시절 버스에서 불렀던 메들리를 그대로 낸 거죠. 그렇게 해서 뜬 거예요.

 

- 이박사 님 스타일을 주장하셨던 건가요?

  그렇죠. 난 남한테 얘기를 안 들어요.

 

- 이견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내가 그렇게 안 했어요. 이렇게 해야 뜬다. 내가 아니까. 지금도 99% 모두 내 스타일대로 해요.

 

- 그때 앨범이 몇 장이나 나갔죠?

  그때 1~5집이 연달아 나왔는데, 89년도 우리나라 인구가 4천만 명이라 하고 그 중 중년이 4분의 1이라고 하면 중년은 보통 내 앨범 두세 개씩은 가지고 있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계산이 되죠? 그리고 메들리로 따지면 그 당시 톱이었지. 관광버스가 한 회사에 20대씩 있는데 50개의 회사가 있단 말이에요. 그 관광버스마다 모두 내 카세트테이프가 있었어. 그거 없으면 관광이 안 돼. 버스를 탈 때 이박사 테이프 있어야 관광을 해.

-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면 TV 방송에도 출연하셨겠네요?

  근데 메들리만 알려졌지 가수로는 인정을 안 했단 말이야. TV 매스컴은 못 탔지. 신곡이 없이 남의 노래만 했으니까. 요즘에는 남의 노래도 리메이크하고 그러잖아. 그 당시에는 남의 노래로는 TV에 나올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일본으로 스카우트된 거예요. 일본에서는 인정을 해줬어.

 

- 지상파 방송에 얼굴을 비추면서 뜨려던 찰나에 일본으로 가신 거 아닌가요?

  지상파에 토크쇼 같은 데는 나갔지. '인간시대', '유쾌한 청백전' 등에는 나갔어요. 내가 좀 특이하니까. MBC '내고향 좋을씨고'도 1회부터 5회까지 쉬지 않고 다 나갔단 말이에요.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관광 온 어떤 사람이 내 메들리가 특이하고 재미있으니까 일본으로 스카우트한 거죠. 거기 가서는 일본 최신곡들을 메들리로 엮어서 불렀는데, 그게 떴어요.

 

- 최신곡을 메들리로 부르셨어요?

  네, 우리나라에서는 흘러간 노래를 메들리로 불렀는데 일본에서는 최신곡으로 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인기를 얻으니까 일본에서 신곡을 만들어 준 거예요. 그게 바로 '스페이스 환타지'야. 그때 장르를 테크노로 하자고 해서 만들어진 게 이 노래고, 뜨다보니까 하나만 할 수 없어 만들어진 곡이 '몽키매직', '영맨'도 만들어졌죠.

 
<'스페이스 환타지' 뮤직비디오>

- 그게 일본에서 만들어진 곡이었군요.

  '몽키매직'은 원래 있던 곡을 내가 리메이크 한 건데, 원곡에는 지금처럼 재미난 가사가 없었어. 우리나라에 와서 내 스타일에 맞게 가사를 수정해서 "원숭이 나무 위에 올라가 꼬리를…" 이런 게 나온 거지. 당시 매니저와 함께 의논해서 만든 가사인데 작사는 내 앞으로 안 돼 있어. 아무튼 "뉴블랙매직 밤에도 원숭이는…" 이것도 다 내가 만든 가사거든. 그게 '몽키매직'이야. '영맨'은 원래 'YMCA'라는 노래인데 트로트, 디스코 풍의 음악이 아니었어. 박자도 나한테 안 맞고, 그래서 내가 편곡을 우리나라식으로 한 거예요. 대한민국식은 이렇다. 말 그대로 '쿵짝쿵짝'해야 한다. 그래서 그게 뜬 거야.

  "내가 누구냐 한국의 이박사" 네 박자 잖아. 이게 뽕짝이란 말이야. 우리나라식이란 말이지. 내가 일본에 갔더니 80여명이 한꺼번에 취재 나왔어. 5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는데, 나를 일본 가수인지 아는 거야. "일본 가수 아닌가?" 그래서 "난 아니다. 한국사람이다" 이랬지. 나는 대한민국의 신바람 이박사이다. 그걸 알고 있어라.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구냐 한국의 이박사" 이런 노래가 가사가 나온 거지.

 

- 그때가 9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한국사람에 대한 일본인들의 고자세가 상당했을 것 같은데, 그들이 이박사 님을 비웃거나 깔보지는 않던가요?

  처음에 가니까 독도가 누구 땅이냐고 물어보는 거야. 당연히 "대한민국 땅이다" 그랬지. 근데 일본 사람들은 나를 신비롭게 바라봤어. 처음에는 고마웠지. 우리나라에서는 알아주지 않은 무명의 메들리 가수인데, 스카우트해주니까. 다른 사람은 일본에 가서 고생했지만 나는 고생 안 했어. 최고 대우를 받았거든. 그러니까 사람이 자부심이 더 생기는 거야. 아, 사람 대접을 해주는구나. 고맙더라고. 그렇지만 내 주관은 확실히 있어야 하니까. 일본에 있을 때도 항상 대한민국 태극마크가 달린 배지를 달고 다녔어. 항상 멘트할 때마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다'라고 했어요.

 

- 현지에서 적응하려면 그쪽 사람들의 눈치를 볼 때도 있을 것 같은데. (디시이용자 '페킬')

  그런 게 절대 없었어요. 난 고지식해서. 아니면 마는 거였어. 사정 안 해!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내가 필요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해다오. 음악도 이렇게 할 것이다. 이렇게 우겼어요. 한 번은 CF를 찍었는데 일본 쪽 코디가 빨갛고 알록달록한 의상을 가져왔어. 근데 난 그게 싫은 거야. 난 대한민국 사람이다. 내 스타일대로 한다. 그래서 그거 찍을 때 굉장히 애먹었어. 나중에 내가 원하는 의상을 입고 CF 찍었는데 그게 대박이 난 거야. 그다음부터는 내 말 잘 듣더라고.


<이박사 일본 바퀴벌레약 CF>

  음악을 만들 때도 내 식으로 했어. 일본에는 세션들이 무지하게 많아. 천재들도 많고, 실력자들도 많아. 근데 나는 한국 사람(세션)을 데려왔단 말이야. 앞은 볼 수 없지만 내 음악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려왔어. 평소 나하고 일했으니까. 그쪽에서 왜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데려왔냐는 거야. 그래서 "음악은 손과 귀가하는 것이지 눈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줬어. 그들도 보니까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 감탄하더라고. 그 사람이 연주한 게 다 떴지.

 

- 그러고 나서 이박사 님에 대한 그 사람들의 시선이 좀 바뀌었나요?

  예, 용기가 대단하다. 가창력 있다. 항상 당당하다. 그런 걸 보여줬어요. 나는 잘생긴 거는 없지만 큰 무대에서도 누구처럼 백댄서 수십 명 동원하지 않고 혼자 해요. 키보드 하나 가지고 단독으로 했단 말이에요. 누구 쭉 깔아놓고 그런 걸 싫어해.

 

- 이박사 님 노래는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흥이 나는 특징이 있어요. 그 비결이 뭔가요?

  음악은 단조로워야 귀에 잘 들어와. 내가 가르쳐 드릴게. 반찬을 많이 먹으면 뭐를 먼저 먹어? 반찬 고르느라고 젓가락이 멈칫할 거야. 근데 음악이 단조로우면 그게 귀에 쏙 들어와. 간단해, 아주 쉬워.

 

- 이박사 님의 노래 기반은 어디에 있을까요?

  살아온 인생 경험이지. 나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걸 싫어해. 간단명료하게 재미있어야지, 난 구구절절하고 푹푹하는 걸 몰라.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생각을 바꿔. 그리고 복잡한 것도 싫어해. 그래서 나는 남한테 희망을 주는 노래를 해요. 넌 이럴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소리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지금도 "가수들이 저희는 언제 뜰까요?"하고 물으면 "다 때가 되면 떠,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좋은 얘기만 하지. 그래서 신바람이야. 이박사 얘기를 들으면 신나고 좋다고 그래. 절대 무시를 안 해요.

 

- 데뷔 때 '2시간 만에 녹음을 마쳤다', '테이프 한 면을 원 테이크로 녹음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디시이용자 '재즈탱')

  응, NG도 없이 한 번에 다 해. 그 많은 걸 잘라서 하면 재미도 없어 메들리는 원래 같이 해야 하니까. 2시간이면 하고도 남지.

- 목 괜찮으세요? 체력적으로 부담될 것 같은데.

  에이~ 잘라서 하면 더 힘들어. 그리고 안 하면 더 안 돼. 술도 계속 먹던 사람이 더 잘 먹듯이 노래도 안 하다 하면 더 안 돼. 메들리라서 하다가 자르면 재미도 없어요. 메들리는 한 번 신기가 오르면 그냥 해야 해. 근데 관중이 있어야 잘 돼 없으면 재미없어.

 

- 녹음할 때는 관중이 없잖아요.

  녹음할 때는 내가 취해야지. 내가 리듬을 타면서 취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절대 안 돼.

 

- 오늘 타고 온 차에는 무슨 노래가 꽂혀 있나요? (디시이용자 '김박사')

  '아수라 발발타', 그 이전에는 '야야야3'

 

- 항상 본인의 음악을 듣고 다니세요?

  응, 난 남의 노래는 잘 안 들어요. 내 노래가 나오고 나서 남의 노래 잘 안 들어. 그리고 이제 개인적인 시간이 있을 때는 국악 들어. 팝송이랑.

 

- 국악을 정식으로 배우셨다고 들었는데 언제 배우신 거예요?

  73년도죠. 한 7년 동안 배웠는데 정확하게 보면 한 7개월도 안 돼. 학원 다니면서 했으니까. 학원도 다녀야 하고 디자인 일도 해야 하니까. 일 하면서 스승이 하루에 한 시간씩 내줬단 말이에요. 난 일하면서 점심시간에 버스 타고 (국악 배우러 학원 갔다가) 온 사람이야. 종로 낙원상가 '비원'이라고 있는데….

- 가수로 데뷔하신 다음에 밤업소를 전전하는 게 싫었다고 한 기사를 봤어요.

  밤업소 다녔죠. 근데 무명이니까 설움이 많았지. 저는 밤업소를 한 달에 30만 원을 받고 하루에 만 원씩 카운터에서 타가면서 11군데에서 일했어요. 저녁 5시에 나가서 새벽 5시에 들어와. 그게 무명이죠. 고생을 많이 했어요.

 

- 밤업소에서 된통 당하신 적은 없었나요? 돈을 못 받았다거나 맞았다거나.

  두어 번 그런 적이 있었어. 공연하고 돈을 못 받았죠.

 

- 데뷔 앨범이 그렇게 많이 팔렸는데도 대우가 신통치 않았나 봐요?

  그럼요. 밤업소에서는 매스컴을 안 타면 무명이나 다름없어. 우선 인정을 받으려면 매스컴을 타서 얼굴이 알려져야 해. 잘 나가는 연예인은 후줄근한 잠바를 입어도 오빠저빠 하면서 난리 치는데, 나는 아무리 재미있게 노래를 불러도 아는 척도 안 해. 그때는 그랬지.

 

- 콘서트 많이 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나는 게 뭔가요?

  북한 공연. 그건 표 내놓자마자 일주일 전에 싹 매진됐어. 그다음엔 대학로 공연. 대학로에서 제일 큰 홀에서 했는데 일주일 동안 모두 매진됐지. 그 다음에 일본 무도관 공연. 한 1만 명쯤 들어갈 수 있는데 거기도 매진됐지.

 

- 무도관은 일본인들에게도 '꿈의 공연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라고 하던데, 대단하셨네요.

  그럼. 근데 콘서트 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을 거야. 대학로에서 3일이 지났을 때 공연하니까 힘들어서 못 하겠더라고, 근데 관중들이 '이박사!' 이러면서 성원해주니까 힘든 줄 모르고 계속하게 되는 거 있지. 관중들한테 기를 받는다는 게 그런 건가 봐.

 

- 행사 끝나면 앵콜하잖아요. 가장 많이 받은 게 몇 번이나 되세요?

  노래를 3곡 하러 가서, 앵콜을 한 15번 받아 봤지. 팬들이 좋아하는데 안 할 수가 없는 거야.


<2003년 발매 앨범 'Epaksa.003'>

- 2003년에 발매된 'Epaksa.003'은 기존 앨범들과 달리 진지하게 음악적으로 접근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테크노, 펑키디스코, 레게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시도하고요. 근데 이 앨범은 별로 안 알려진 것 같아요.

  그건 진짜 잘 된 음악이야. 그때 굉장한 세션들이 음악을 잘 만들어 줬지. 그게 내 스타일이기도 하고, 레볼루션(정규 2집) 식으로 만든 거야. 'Hey Mr. DJ', '싼티멘탈', '달고나', '만복이'… 한 10곡 됐는데 잘 나왔어. 근데 방송 쪽 관계자분의 활동이 부진해서 하다가 중단했단 말이야. 그 음악은 지금도 아까워해.

 

- 그때는 소속사가 있었나요?

  개인적으로 제작했어요. 음반 만들어 주는 사람도 내 후배였는데, 아주 돈이 많이 들어갔지. 그 음반이 여태껏 한 앨범 중에서 제일 잘됐어요. 나에 대한 게 확실히 나왔어. 내가 하고 싶은 게 100이라면 70% 이상 나왔단 말이야.

 

- 아쉬운 만큼 행사 때 많이 불러서 알리셔야겠네요.

  그 음악은 행사용은 아니야. 음악은 세 가지가 있어요. 사람으로 말하자면 친구, 술친구, 인생을 얘기하는 친구가 있는 거지.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모니터용'은 들었을 때 끝내줘야 해. 또 방송으로 보니까 아주 화려하고 좋은 음악이 있어, 그건 '방송용'이야. 근데 모니터용도 아니고 방송용도 아니고, 라이브로 부르니까 되게 좋은 음악이 있어 이건 '라이브용'이지. 이렇게 세 가지예요.

  여기서 3집은 모니터용이야. 듣기에 좋거든. 근데 공연용은 안 돼, 이걸 TV에 내보내면 보여줄 게 없어. 라이브용은 라이브 맛이 나야 하는데, 그러니까 '네 박자'라는 게 있어. 라이브에서는 '쿵짝쿵짝'이 들어 가야 한국 사람은 신이 나. 이건 내가 최초로 얘기해 주는 거야.

 

- '원조 한류 스타', '원조 엽기 스타'라는 소리 많이 들으시죠? (디시이용자 '미니dog, ▶쵸파주인◀')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원조는 아니지. 나 이전에도 조용필 씨, 나훈아 씨, 계은숙 씨, 김연자 씨 등 먼저 활동한 가수가 많더라고. 근데 신세대한테 어필되고, CF까지 찍으면서 활동한 건 내가 원조지.

 

- 신세대가 대중 문화를 선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죠.

  요즘 싸이가 전 세계를 홀딱 뒤집어 놓았잖아. 그러니까 이전에 미국에 간 한국 가수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기억에 없어. 싸이만 생각나는 거야. 마찬가지로 이박사가 일본 가서 홀딱 뒤집어 놓으니까 갑자기 윈조가 된 거지.

- 싸이를 보면 기분이 어떠세요? 부럽지 않으세요? (디시이용자 '미니dog, ▶쵸파주인◀')

  좋지요. 얼마 전에 노홍철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형님 어디세요?" "여기 와 있다. 넌 어디냐!" "저 싸이 형님하고 차 한 잔 먹고 있어요" "축하해 줘라 좋은 일이다" 이렇게 말해 줬어요. 며칠 전 라디오 인터뷰를 했을 때도 "노홍철, 너도 잘되고 싸이도 잘 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최고 자랑거리가 아니냐" 이랬고요. 최고잖아. 얼마나 좋아. 나는 외국에 다니면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 노력했는데, 싸이가 나보다 더 잘 알려서 얼마나 좋으냐고. 우리 세대가 못 한 걸 후배들이 해주니까 최고야.

 

- 싸이하고 만나 보신 적 있으세요?

  못 만나 봤죠. 그 전에 내가 일본에 와서 '몽키매직', '영맨' 부르고 행사 다닐 때, 내 앞 순서에 하고 갔다더라고.

 

- 대학 축제도 많이 다니셨었죠?

  2000년, 2001년에는 대학교마다 다 다녔어요. '몽키매직', '영맨' 나왔을 때 한 번도 안 빼고 깡그리 다 다녔지.

 

- 그때는 싸이도 부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땐 최고였죠. 이벤트 주최 측에서 이박사가 없으면 행사를 못 하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때 내가 다리 다치고 나서 몇 개월 있다가 혼성그룹 '자두'가 올라왔어. 그리고 또 몇 개월 있다가 '하리수'가 올라왔지.

 

- 요즘에 방송 많이 나오시면 아이돌 가수 많이 보실 텐데 어떠세요?

  좋지. 그림이 좋지. 그리고 요즘에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 준비된 가수들이야. 어쩌다 나오는 가수가 아니고 이미 다 공부하고 노력을 해서 딱 준비된 가수들이야. 인정해요.

 

- 그런 생각이 드신 이유라도 있어요?

  우리가 할 때와 다르니까. 우리는 노래자랑에서 상 받거나 지방 어디서 노래 잘한다고 하면 돈 있는 사람들이 투자해서 음반 만들고 그러는데, 요즘 가수는 이미 준비가 딱 돼 있어. 지금 가수 중 10이면 7은 다 준비돼서 나오고, 그 중 3은 돈으로 되는 가수가 있어. 돈으로 음반 만들어서 나오는 가수가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돈을 가까이하면 예술인이 안 돼. 그러니까 가수를 상품으로 보고 만들면 오래 못 가.

 

- 혹시 좋아하는 걸그룹 있으세요?

  글쎄, 나는 외국 그룹을 좋아해서.


<출처 = 가수 공식홈페이지·SBS(황광희)>

- 어떤 그룹인데요?

  딥 퍼플 같은 록 밴드 노래. 락 하는 사람을 좋아해.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김경호도 좋아하고, 윤도현 씨도 좋아해. 내가 왜 김경호 씨와 윤도현 씨를 좋아 하냐 하면 김경호 씨는 목소리를 참 좋아해. 새벽에 이슬이 또르르 굴러 내리는 그 기가 막힌 목소리가 있어. 윤도현 씨는 그 반대란 말이야. 대한민국에서 진짜 갖고 싶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 좋아하는 거야.

 

- 트로트 대신 락을 하고 싶으셨나 봐요?

  다 하고 싶었어. 트로트, 민요, 락 모두 다. 진짜 딱 꼬집으라면 민요 하나지. 민요가 되게 어려워요.

 

- 아이돌 중에 눈에 띄는 가수는 있나요? (디시이용자 '나는 이박사')

  광희 정도? 왜냐하면 광희 그 친구는 말 억양과 동양인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

 

-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아시죠?

  예.

 

- 혹시 섭외 받으신 적 있으세요?

  그런 덴 안 나가지 이제. 십 년 전에 나오라고 하면 내가 나갔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제 후배들이 많고 그런데 내가 지금 나가고 그러면 이상하잖아.

 

- 왜요?

  후배들이 '몽키매직', '영맨' 부르겠다고 하면 내가 심사는 봐주겠지만, 내가 나가수 나가면 그림이 이상하잖아. 내 이름이 이박사란 말이야. 이박사라는 거 자체는 존중의 말이고, 으뜸이 되는 말인데. 그냥 일반인 이용석(본명)이 아니고 이박사는 최고 A 클래스 이름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들이 내 노래한다면 어 그래? 잘 한 번 만들어 봐라. 잘 편곡해 봐라. 이러지만 내가 나가서 한다면 그렇잖아. 이름이 이박사가 아니면 해. 이용석이라 하면 하지. 왜냐하면 공석에 가도 '이박사 오셨어요?', '선생님 오셨어요?' 이런단 말이야. '어이 이박사 너 왔어!' 이러는 사람 없어 지금도.

  '나는 가수다'라는 말도 마음에 안 들어. 가수라는 건 그걸 업으로 하는 게 가수야. 사진 찍는 기자님도 오늘 관두고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불러야겠다. 그러면 가수인 거야. 노래하는 사람이 가수지 가수라고 특별난 사람이 아닌 거야. 안 그래? '나는 가수다' 자체가 난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나가수'에 안 나온 사람은 가수가 아닌가?

 

- 나가수에 이박사 님이 나오면 어떨까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에이~ 그건 사람들의 욕망이고. '이박사 님이 나오면 재미있겠다' 그런 그림만 생각한 코미디에는 안 놀아나. 아닌 건 아닌 거야 나는. 평을 하라면 하겠지만.

 

- 그러면 '불후의 명곡'에서 이박사 특집으로 하면?

  하지! 내 것은 해야지 왜 안 해. 거기서는 민요도 해야 하고, 정통 트로트도 해야 하고, 락도 해야지. 그런 거야 좋지.

 

- 일본에는 얼마나 있으셨어요?

  6년 있었죠.

 

- 처음에는 1년 계약하고 가셨죠?

  1년 했는데 한 3개월 지나서 히트하니까 2년을 연장했어. 돈을 더 준다니까 해야지. 2년 되기 전에 또 히트하니까 계약 끝나고 다른 데로 갈까 봐, 또 연장하자는 거야. 그래서 6년이죠. 이런 것도 처음이야 난.

 

- 일본에서 돌아온 거 아쉽지 않으세요?

  일본에서 대우받고, 한국에 와서 두 달 정도 있다가 인터넷에서 '와, 이박사다' 이러면서 떴잖아. 그래서 아쉬운 건 없어요. 그리고 좋은 가수들이 계속 가니까 괜찮아. 보아 씨도 가서 대박 났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아 'NO.1', 겨울연가>

- 이박사 님이 1995년에서 1998년까지 일본에서 기반을 다져 놓은 뒤, 2001년 보아 2004년 겨울연가 등 계속해서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어요. 언론에서 크게 알아주지는 않아도 개인적으로 뿌듯하시겠어요.

  그럼, 좋지. 내가 가서 하고 온 데잖아. 이후에 우리나라 가수가 잘 되니까 얼마나 좋아.

 

- 일본 팬클럽 회장이 한국에 수시로 와서 이박사 님 집에 머물렀다 간다고 하던데, 지금도 오나요?

  네, 와요. 일 년에 한 번씩 와요. 95년부터 왔다 갔다 했죠. 지난해 여름에도 왔다 갔는데 이번에는 겨울에 오겠지?

 

- 그 분은 왜 그렇게 오신대요?

  나를 만나면서부터 한국을 알게 됐고, 한국말을 배우게 됐고, 한국 노래를 알게 됐대요. 그래서 오면 한국 관광을 다 하고 가. 한국 가수들도 많이 알더라고. 다행이지 뭐야.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 아주 선두 주자지. 고마운 사람이야. 한국말도 잘해. 어우 끝내줘.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

 

- 일본어는 좀 하세요?

  일본어는 많이 안 배웠어요. 일본에서 돈을 벌고 일본에서 히트됐지만, 나는 우리나라 말이 좋아요.

- 한국에서 '뽕짝' 가수라고 하면 조금 폄하되곤 하는데, 혹시 무시당해서 기분 나빴던 적은 없나요?

  글쎄, 뽕짝 가수라고 무시당한 적은 아직 없어요. 남들이 하는 전통 가요를 똑같이 했으면 모르겠는데, 색다르게 하니까 젊은 세대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요.

 

- 성북구에만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계신 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거기서 서울로 올라와서 애들 키우다 보니까 성장을 하거든. 성북구 종암동, 월곡동, 장위동만 37년 째야. 다른 데 갔다가 다시 왔어. 적응이 안 돼 못 있겠더라고.

 

- 연예인 중에서 누구와 가장 친하게 지내세요?

  연예인 하고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없어요. 나는 나예요. 연예인들은 무대 올라가기 전에는 되게 친해. 근데 눈에 보이지 않는 라이벌 의식이 조금 있나 봐. 나는 특별히 자주 만나는 연예인은 없어요. 그냥 나는 나야. 서로 무대 나오기 전에는 그냥 겉으로만 아는 척하고 그런데, 특별히 마음을 주고받는 연예인은 없어요. 나는 다시 태어나면 연예인을 안 해! 절대 안 해!

 

- 가끔은 외로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외로운 것보다 인간미가 없나 봐. 나는 아기자기한 정 같은 게 없어. 그냥 무대에서 끝이야.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연예인 안 해요.

 

- 트로트 가수 정희라 씨를 아시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디시이용자 '오하영')

  누구?

 

- 가수 정희라요. 그분이 낸 노래 중에 '쏘시지타령'이 있는데, 가사가 노골적으로 야해요.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모르는데… 아직 못 만나봤어. 근데 재미있겠구먼. (웃음)


<캡처 = MBN>

- 2010년 8월 MBN 뉴스에 출연해 남자 앵커에게 노래를 따라 부르라면서 어설프게 하니까 호통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진짜 웃겼어요. 기억나세요?

  그 순간만큼은 노래를 따라서 해야 하는데 앵커가 딴청을 하잖아. 그래서 정신차려라 너 잘못하면 '해고야' 이랬지. 호응을 해줘라 그거예요. 근데 그 프로그램이 대박이 난 거야. 대본이 없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

 

- 지난 8월에는 팬타포트락 페스티벌에 참여하셨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그쪽에서 초대를 해줬는데, 젊은 사람들이 좋아해 줘서 되게 고마웠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걸 느꼈지.

 

- 반응이 어땠어요?

  옛날의 인기를 다시 되 찾은 것 같은 느낌?

 

- 혹시 '펌프' 오락기 아세요?

  아, 들어봤어요. 노래가 나오면 발로 밟고… 그때는 거리에도 못 다녔어.

 

- 그때 '펌프'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잖아요. 거기에는 '몽키매직', '영맨' 같은 이박사 님 노래가 들어가 있었고요. 한 이용자가 '펌프'로 돈을 얼마나 버셨냐고 물어보셨어요. (디시이용자 '만찐두빵')

  '몽키매직', '영맨' 같은 건 판권이 일본에 있어. 다 그쪽으로 들어갔겠지 뭐.

 

-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에 출연해서 한때 100억까지 버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거는 2000년부터 다치지 않고 공연을 다니고 그랬으면 CF부터 음반 판매까지 100억도 더 벌었는데 그동안 중간에 다쳤기 때문에 그걸 못 벌고 날아갔다는 얘기야.

 

- 일본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버셨죠?

  거기서 번 걸로 지금까지 쓰는 거지 뭐. 로열티도 잘 나오고, 그걸로 지금까지 쓰는 거지 여기서 번 걸로는 안 돼.

 

- '돈과 인기에 대한 집착은 없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세요.

  예, 전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돈 욕심도 없고, 인기 욕심도 없고 그냥 누가 날 찾으면 그게 좋은 거지.

- 이런 마인드를 갖게 되신 계기라도 있나요?

  나는 남보다 앞서는 노래를 하는 걸 좋아해.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거지. 처음에는 나훈아 씨를 좋아했어. 남진 씨도 좋아했고. 근데 나훈아 씨를 좋아한다고 내가 나훈아 씨가 될 순 없잖아. 목소리를 흉내 내봤는데 그림 자체가 다르니까 그것도 안 돼. 그래서 내 것을 찾아야겠다. 사람은 신 나는 걸 좋아하니까 신 나는 음악을 해야겠다. 신 나는 락을 듣다 보니 가요도 신 나게 불러야겠다 생각했어.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민요를 불러야겠다 해서 민요도 접하게 된 거야. 남이 안 하는 음악을 해야 관심거리가 되겠구나. 돈보다는 남보다 앞서는 노래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게 좋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 팬들과는 소통은 자주 하시는 편이세요?

  예전에는 회사에서 관리할 때 일 년에 한 번씩 모여 대화를 했는데 그때 팬들은 다 시집·장가 갔을 거야. 내가 그동안 음악을 많이 안 했기 때문에 날 어디서라도 봐주면 고맙지. 항상 그 사람들도 잘 됐으면 해.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잘 됐으면 좋겠다. 이게 '아수라 발발타'의 뜻이야.

 

- 대형 기획사에서 소속돼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텐데.

  일본에서도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아 뜬 거지. 거기서는 콘서트도 하고, CF도 찍고, 뮤직비디오도 3개나 찍었거든. 기획사에서 포장을 잘 해준 거지. 가수들은 다 그런 걸 원해. 근데 지금은 내가 어디 소속돼 얽매이는 게 싫어. 신인 때는 '키워주십쇼' 하는 거였다면, 지금은 다 아니까. 자유로운 게 좋아. 지금도 매니저가 있지만 계약서를 쓰거나 그런 게 없어. 인간적으로 하는 거지. 매니저가 할 수 있는 건 매니저가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고. 근데 구구절절이 계약서를 써서 어쩌구저쩌구… 그거 이상하잖아. 서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면 잘 돼. 간단한 거야. 난 매니저가 뭘 바라는지, 매니저는 나한테서 뭘 바라는지 다 아니까.

 

- '아수라 발발타' 이후 차기작은 구상하셨나요?

  대충 구상은 해놨는데 그건 비밀. 우리 아들하고 해놨어요. 벌써.

 

- 언제쯤 내실 것 같아요?

  이제 '아수라 발발타'로 1년은 더 해야지. 1년은 더 한 뒤 알아보려고.

 

- 이박사 님은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디시이용자 '호놀')

  예술인으로서요? 예술인으로서 항상 창작하는 사람. 정말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느낌표'라고 할까? 똑같은 음악은 재미없잖아.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영상 인사말 남겨주세요.

 

  이박사는 왠지 친근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가수다. "좋아좋아좋아", "앗싸", "미쳐미쳐"와 같은 이박사의 추임새가 자연스럽게 관객의 흥을 돋우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색도 울긋불긋 휘황찬란하고, 패션도 예사롭지 않다. 공연장에 와준 팬들에게 재미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작정한 것 같다.

  그러나 이박사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면 포커페이스다. 잘 웃지도 않고, 표정을 찡그리지도 않아 그의 기분이 어떤지 읽을 수 없다. 이박사와 처음 대면했을 때도 정중한 인사 한마디 이외에 '날씨가 어떻다', '요즘 바쁘다' 등 쓸데없는 말은 일절 없었다.

  '테크노 뽕짝'이라는 독특한 음악이 그를 30대 후반의 친근한 형님쯤으로 상상케 했을 뿐, 이박사는 언제나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음악을 이야기했다. 남들은 따라올 수 없는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박사의 포부이자 그가 음악을 대하는 자세다.

  이박사를 주제로 인터넷서핑을 하다 보면 이런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박사 대단하지 않아?", "원조 한류 스타는 이박사 아닌가?" 누구에게 물어보는 말투다. 뭔가 대단한 것 같은데 확신을 못 하겠으니 누가 댓글로 설명해주길 바라는 표현이다. 이는 이박사가 자아내고 있는 한국의 전형적인 B급 문화, 즉 싼티나 보인다는 점이 그들의 확신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박애경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말을 옮겨본다. '이박사의 노래는 토종과 외래, 저급과 고급, 구식과 최신 유행이라는 이분법으로 고정된 문화지형을 타파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박사만의 독창적이고 멋진 음악을 기대해 본다.

 

사진 = Mustapha(mustapha7jazz@gmail.com)



김기기자 dc.ki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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