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하대리, 하짱 그리고 배우 전석호 ②

기사입력 2014-12-11 19:07:00

<1편에서 이어서>

 

(인터뷰 당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속어는 그대로 살렸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신입사원 중 한 명을 데려다 키운다면 누구를 데려갔을 것 같아요? (디시 이용자 'ㅇㅇ')


 아… 글쎄요. 어렵네요. 하대리가요, 제가요?



- 하대리는 누구고, 본인은 누구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안영이는 저도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저는 여자 후배를 울린 적도 있어서요. 아까 그런 표현 때문에. 제가 표현을 잘 못하겠어요. 학교 다닐 때도 여자 후배들이 잘못하거나 하면 그냥 넘어갔어도 되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고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혼을 낸다거나 그래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 제가 아주 잠깐 전석호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건 개벽이(한석율)와 잘 맞을 것 같다는 거예요.


 개벽이? 아, 개벽이 좋지요. 개벽이가 술을 잘 마시나? 우선 술을 잘 마셔야 해요. 하하하. 제 후임을 하려면요.



- 성대리님 인터뷰 보니까 변요한 씨에게 '너무 화내서 미안해' 문자 보냈더니 '술 사주세요'라고 문자가 왔다네요.


 그래요? 그럼 개벽이! 하하하.



- 그런데 또 무대 공연은 강하늘 씨가 많이 하잖아요.


 아, 그렇죠. 아 진짜 하늘이를 보면… 엄청 바른 청년 같아요. 촬영장 와서도 항상 밝게 인사하고 그러는 거 보면 너무 바른 청년 같아서 내가 혼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도덕적 가치관이 남들보다 조금 낮아요.



- 그럼 괴롭히세요. 하하하.


 안돼, 안돼, 안돼, 상처받을 거예요.



- 울려요. 그러다 황정민 씨(강하늘 소속사 선배)에게 혼나는 거지. 하하하.


 그러니까요. (웃음) 그러면 안 돼요. 아, 개벽이? 장그래… 아, 그런데 네 명 다 사실 욕심나요. 그런데 술 좋아한다는 개벽이. 하하하.



- 그럼 하대리는 누굴 좋아했을까요?


 하대리도 그랬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처음 인턴 때 백기가 우리한테 왔던 것도…. 어쩌면 백기가 가장 잘 맞을 것 같아요. 석율이는 항상 현장, 현장 하니까 그렇다 치고, 하대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신분까지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대사는 없지만 장그래를 받았을 때는 떨떠름해할 것 같아요. 스펙도 그렇고요. 성별에서도… 사실 안영이와 장백기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어요. 일 잘 하고, 엘리트고.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장그래, 안영이, 한석율, 장백기 = 출처 미생 홈페이지

- 두 사람이 목적 지향성에서 같은 것 같아요.


 네. 그러다 보니까 윤태호 작가님도 그렇고 저희 작가님도 그렇고 백기를 인턴 때 우리 팀에 넣었다가 정직원이 됐을 때는 안영이를 우리 팀으로 보낸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그렇게 그리고 있어요. 사실 저는 연극할 때 공동창작을 많이 해요. 저희가 대사를 쓰고, 연출과 상의해 장면을 만들고, 장면을 컨펌받으면 연출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계속해서 작업하고, 거의 24시간 붙어서 작업하는데 매 장면, 매 대사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괜히 장백기가 우리에게 온 게 아니라는 거죠. 처음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하대리는 백기?



- 미생 팀 전체를 봤을 때 전석호라는 사람은 어떤 캐릭터와 비슷한 것 같아요? (디시 이용자 'ㅇㅇ')


 글쎄요. 지금 연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하대리 말고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만약 이 인물이 더 풍성해지고, 더 입체적으로 보였을 때는 저와 다른 면이 보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한 것으로 봐서는 하대리와 제일 가까워요. 저랑 딱 이야기 나눠도 그렇지 않아요?



- 네.


 으하하하.



- 똑같은 것 같아요.


 하대리야. (웃음)



- 간접적으로 경험한 회사 생활은 어떤 것 같아요?


 사실 회사 생활을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잘 맞아요. 저는 사실 군대 때도 간부들이 '너 군대 들어와라' 했어요. 말뚝 박으라고요. 그런 생활을 몸서리치게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되게 강한 것뿐이에요. 저는 싫어하는 게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래서 회사 생활도 사실 잘 맞아요. 촬영 때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이 많은데, 책상에 앉아서 그냥 멍하니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는 책을 읽든 노래를 듣든 아니면 내가 뭘 해야 할까, 내 인생 플랜을 짜든 무언가를 계속해요. 누가 일을 주지 않아도 저 혼자서 할 게 엄청 많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할 게 너무 많고요.



- 뭐가 그렇게 많아요?


 형들하고 이야기를 해도 내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까요. 하하하. 그래서 회사 생활 때 일을 안 주고 그런다? 물론 시스템 자체를 배우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제 친구들 중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저와 이야기를 하면 '너는 회사 왔으면 정말 술 때문에 죽었을 거야. 만날 끝나고 이 사람 저 사람 잡아서 술 마시자고 하고 얘기하자고 그랬을 거야'라고 해요. 상사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죠. 열정적이고, 일 열심히 하려고 하고, 끝나고 꼭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집에 가자고 이야기하는 타입이고. 그래서 좋아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건 좀 힘들었겠다. 매일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건요.



- 되게 프리한 분 같네요. 자유로운 영혼. 그래서 옷도 그렇게 프리하게 입고 다니시나요? 하하하.


 아~ 전혀 신경 안 써요. 하하하.



- 기자님들도 인터뷰 나온 전석호 씨보고 많이 놀랐을 거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했어요. 하하하.


 아, 그 매체는 모자를 안 써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거든요.



- 잘 쓰셨습니다. (웃음)


 그리고 제가 원래 삭발을 자주 해요. 아오~ 머리카락을 이렇게 많이 길러본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 사실 질문 중에 직모 관련 질문 있었어요.


 엄청 직모예요.



- 어떻게 관리하세요?


 저요? 아무 관리 안 해요. 저는 비누로 머리 감고, 비누로 샤워해요. 로션 이런 것도 안 바르고요.

 


- 샴푸는 쓰세요. (웃음)


 샴푸는 요즘 써요. 이게 파마한 머리인데 비누가 알칼리성이라서 파마가 금방 풀린대요. 그래서 미생 헤어팀에서 샴푸 쓰라고 했어요. 그래서 '왜요?' 했더니 그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저 처음 알았어요. '그래요?' 하고 '아, 샴푸 써야겠네' 해서 쓰죠. 거의 처음 쓰는 거예요. 아버지도 비누 쓰고 다 비누 쓰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 비누 쓰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엄마의 공간이라는 게 있잖아요. 우리는 절대 안 건드렸어요. 마트를 간다, 냉장고를 산다 그러면 어머니가 마음껏 놀 수 있게 하죠. 우리는 그냥 조용히 따라만 다니고요. 이게 어렸을 때부터 그러다 보니까….



- 마초의 세계에 사셨군요.


 그렇죠.



- 그럼 남중·남고?


 아뇨. 또 그것도 아냐. 하하하. 그러니까 얼마나 더 답답하겠어요. 둘 다 공학 나왔어요. 고등학교 때는 남자 여자가 갈라져 있었고.



- 중학교는 합반?


 네. 초·중학교는 합반이었는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 아, 이상하네. 딱 군체질이네요.


 진짜 그래요. (웃음)



- 그래도 안영이와 케미가 잘 맞는다고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 좀 해보래요. (디시 이용자 'ㅇㅇ')


 아유~ 큰일 나요. 저질 코미디가 될 거예요. 하하하.



- 젊은 배우 중 드물게 상남자 캐릭터라서 새로운 캐릭터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래요. (디시 이용자 'ㅇㅇ')


 아, 로맨틱 코미디 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연극하면서 러브신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요. 또 저희는 창작을 하니까 제가 제 인물을 만들어 내고, 연출이 저를 봤을 때 이런 인물이 좋겠다 해서 둘이 합의점을 찾아가니까요.



- 연출에 도전하실 생각은 없어요?


 아~ 없어요. 얼마 전에 (김)원석이 형(미생 PD)과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아, 저는 다 형님이라고 불러요. 연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방송에서는 편집점, 음향, 카메라 각도 이런 것까지 다 알아야 해요. 다방면에서 잘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방면에서 '정말' 잘 해야 해요. 물론 좋은 동료를 만나면 그런 것들을 보완해줄 수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연극 연출도 같은 것 같아요. 음향, 조명 분장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아직 저는 그런 부분에 크게 관심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누군가, 조력자를 만나 같이 공연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정말 재밌는 거예요. 10명의 사람이 다 같은 목적지로 다 같이 달려가는 거예요. 그게 재밌는 거죠. 사실 제가 지금까지 했던 공연은 연습 때가 제일 재밌어요.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돈 받고 연습 보여주면 안 되나?' 그래요. 하하하. '할 수 있어?' 그러면 '아니 못 하지. 관객들이 치를 떨걸?' 그러죠. 왜냐, 우리 욕하고, 신 나서 옷 벗고 연습할 때도 있고, 속옷만 입고 연습할 때도 있거든요. 그 과정들이 정말 재밌어요.



- 옷 벗고 한다고요? 그럼 웃돈 주고 살 것 같은데요? (웃음)


 으하하하.



- 경매하면 한 3~400만? (웃음)


 저 공연할 때 저와 같이 했던 배우 형들이 인기가 많았어요. 저는 관객들 와도 인사도 잘 안 하고 그래요.



- 다른 인터뷰를 보니까 데뷔를 2010년이라고 하셨더라고요.


 그렇죠. 그때 대학로에 나와서 공연하고 그랬으니까요.



- EBS 청소년 드라마 출연했던 걸 왜 데뷔작으로 안 하셨나요?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 거죠. 꿈은 있었는데 내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갔던 게 더 많았어요.

 


- 출연하고 싶지 않은데 출연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했던 것들이 엄청 많아요. 그게 고2~고3 때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몇 번 출연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도 모르고 뭣도 모르는 XX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뭘 알고 있지?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나? 작품 보는 눈이 있나? 생각이 있나? 내가 인문학적으로 뭐가 있나?'.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형들하고 이야기하다가 그랬나? 제가 술을 조금 일찍 배웠어요. 형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왜 이 XX을 하고 있지?' 그랬죠. 제 연기를 봤을 때 '좋아, 멋있어' 그러면서 속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한테 물어봤어요. '석호야, 너는 떳떳하니?' 나는 아니더라고요.



- 그걸 깨달은 게 언제였나요?


 고3 때였던 것 같아요.



- 조숙했군요.


 아뇨. 노숙했어요. 하하하.



- 조숙이라고 하세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항상 이야기하셨던 게 '너 하고 싶은 거 해' 이거였어요. 그런데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까 내가 하고 싶어서 다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차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놈이 그러고 있으니까 스스로 창피한 거예요. 내가 바닥이 드러날 거라는 게 딱 보이는 거죠. 아, 이건 아니구나.



- 밑천 없이 잘난 척한다, 이런 느낌이었나요?


 네. 그 순간 '이건 진짜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그때 운 좋게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어요.  2003년부터인데,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2010년 대학로에서 인디아 블로그라는 작품을, 연우와 만나기 전까지 정말 학교에서 연극만 했어요. 학교에서 공부하고, 연극하고, 형들 만나서 형들에게 배우고, 교수님과 이야기하고. 매번 그랬어요. 지금도 어떻게 보면 그때 버릇이 있는 거죠. 제가 최형인 교수님 아래에서 배웠는데 배우는 끊임없이 배우는 직업이라고 배웠어요. 공부하고,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누군가의 가르침을 찾아가야 하고, 깨닫고, 또 스스로 틀렸다고 혼내기도 하고. 이런 과정들을 그때 배운 거죠. 그때도 사람들은 제가 연기를 하는지 몰랐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미생 나온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안 했어요.



- 왜요?


 너무 부끄럽잖아요. 제가 TV에 나오는데 아는 놈이 본다고 하면요 사실 저는 공연할 때도 친구들 안 불러요. 나를 평가할 사람은 내 지인이 아니라 나를 모르는 불특정 다수, 소수인 거지요. 나를 아는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게 자기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저희 돌아가신 할머니가 제가 좋은 극장에서 공연할 때 한 번 보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제 공연을 못 보셨어요.



- 못 보신 거예요, 안 보신 거예요?


 안 보신 거죠. 저는 불편한 소극장에서 하는데, 할머니를 모셔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예요. 할머니가 3년 전인가 4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마 지금 제 모습 보시면 좋아하실 거예요. 이성민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네 부모님은 네가 연극, 영화를 하는 것보다도 TV에 나오는 걸 좋아하신다고요.

 


- 그럼 지금 더 좋아하시겠어요.


 많이 좋아하세요.



- 팬아트 집에 가셔서 꼭 보여드리세요. 사람들이 나 그림도 그려준다고 자랑하시고요. (웃음)


 버릇 들어요. 하하하. 아들이 이런 거 하고, 누가 좋아한다고 하면 버릇 든다니까요. 어디 가서 자랑할 사람들이라. 하하하. 안돼요.



- 미생 출연하신 거 정말 좋으시겠어요. 연극판의 엄청난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니까요.


 진짜 좋아요. 선배님들 하시는 것만 봐도요. 제 꿈 중 하나가 이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단역으로 혹은 엑스트라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어요. 누구나 다 그랬으니까요. 그때 주연배우들 촬영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도 저는 저 아래 있는, 촬영장 50m 가까이도 못 가는 사람이었어요. 그 현장에 가고 싶었죠. 지금은? 그냥 보고 있으면 돼요. 제 촬영이 아닌 날에도 촬영장 가도 된대요. 그럼 제가 가서 선배님들 연기하는 걸 봐요. 그걸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석호야, 여기까지 왔구나. 나는 항상 저 뒤에 있었는데'. 세트장이 영업3, 2, 1팀, 김부장님실, 자원 1, 2팀, 철강, 엘리베이터 순서 대로 있어요. 저는 항상 엘리베이터 뒤에 있었어요. 촬영 현장을 볼 수가 없어요. 감독님의 슛, 컷 소리만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주인공들이 연기하고 있으면 그 옆에서 방해 안 되게 조용히 앉아 보고 있어요. 정말 기분이 좋아요.



- 그 안에 들어가시면 더 좋지 않나요?


 아, 그렇죠.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오차장 하고 싶다니까요. 하하하.



- 다른 인터뷰에서 드라마 이제 안 할 거라고 해놓고서. (웃음)


 아~ 내가 그 이야기를 했네.



- 연극과 영화만 일 년에 한 편씩 할 거라고 했으면서. (디시 이용자 'ㅇㅇ')


 그건 꿈. 꿈이요.



- 그럼 진짜 드라마 안 나오실 거예요?


 사실 위험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거짓말은 아니니까요. 저랑 안 맞는 드라마가 꽤 많은 것 같아요. 막장드라마 같은 것들이요. 그런 부분에서 드라마에 별 흥미를 못 느껴요.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뭐가 됐든 해요. 미생도 사실 제가 원작을 워낙 좋아하고, 윤태호라는 작가님을 제가 정말 좋아해요. '야후'라는 작품도 그렇고, '이끼'라는 작품도 정말 재밌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그걸 한대!



- 게다가 내가 한대! 하하하.


 그러니까요. 그리고 감독님을 만났는데 정말 좋은 사람인 거예요. 저는 작품 함에 있어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실력이 뒷받침되는 선에서 하는 이야기지요. 감독님을 처음 보고, 미팅하면서 오디션을 보는데 사람이 진짜 좋은 거예요. 이거 욕심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드라마, 영화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과 좋은 작품을 함에 있어서는 가리는 게 없어요. 이거 정정해줘요. (웃음)



- 네. 드라마 출연 안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이면 출연할 거다. 정정! (웃음)


 그런 좋은 작품은 사람마다 기준은 다 다를 거예요. 그런데 '미생'이라는 원작 자체는 제가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 '미생2' 나온다던데.


 하대리는 안 나올 텐데요. 뭐.



- 안 나올 수 없는데~. (웃음)


 아! 모른다! 아까 패러디보니까 그런 거 할 수 있겠다. 하대리가 외국 피랍 노동자가 된 거야. 으하하하. 사람들 모를걸요? 내가 여름 되면 농담이 아니라 피부가 적갈색이 돼요. 테이블 색이 돼요. (웃음)



- 모든 짤방의 시작이 된 '터키 블루스'. 기자간담회 하면서 사진 엄청 찍으셨더만요.


  아니, 그걸 도대체 언제 찍으셨나요?



- 그 기자간담회가 작년 8월일 거예요. 그때 찍은 사진으로 애들이 놀더라고요. 특히 젬베 연주하는 거.


 어마어마한 사진들이 더 많을 거예요. (웃음) 인생사 진짜 모르는 거예요.



- 터키 블루스란 작품은 티키를 직접 여행한 것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데, 당시 여행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서 공연에서 보여줬단 말이에요. 공연에 쓰일 로드무비를 찍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디시 이용자 'ㅇㅇ')


 사실 회의감까지는 아니지만, 되게 살 떨리는 작업이에요. 사람들 앞에 발가벗겨지거든요. 저희 집단의 특성일 수도 있는데 제 경험,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내 신념들,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관,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을 스스럼없이 다 꺼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와 다른 사람이 있을 거고, 누군가가 내가 가진 생각을 비판할 때도 있어요. 사실 엄청 속이 상하고, 엄청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요.

 

▲터키 블루스. 2013

 

 처음에는 좋은 면들만 봤던 것 같아요. 처음 여행을 다녀와 이 작업을 함에 있어서 영상이 있고,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관객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고요. 관객들이 원하는 건 정말 누군가의 삶인 거예요. 그럴 싸하게 보이는 건 광고고, 사진이고, 엽서인 거죠. 관객들이 보고 싶은 건 예쁜 엽서 뒤에 쓰여 있는 글인 거예요. 누군가의 글. 저 사람이 여행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무엇을 싫어했는지를 보고 싶어 했는데 그걸 쓴다는 건 나를 보여줘야 하는 거죠. 그리고 요즘 관객을 엄청 똑똑해요. 어설프게 해서는 욕먹기 딱 좋아요. 하하하.



- 어설프게 해서 욕먹은 작품이 있었나 보네요.


 어우, 그럼요. '터키 블루스'는 2년인가 3년 동안 만든 거예요. 같이 하는 배우가 여행을 갈 수가 없어서 저와 연출과 카메라 하는 형이랑 셋이 가서 찍었죠. 또 인디아 블로그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지방 다니면서 중간중간 쇼케이스 형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었어요. 그때는 같이 할 배우가 공연을 하고 있어서 발표를 저 혼자서 하게 됐죠. 하아… 끝나고 대학로에 새마을금고가 있어요. 혜화역 4번 출구 배스킨라빈스 앞. 새벽 세 시에 술을 마시고 거기서 펑펑 울었어요. 너무 속상하고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내 야욕이었고, 내 실력이 거기까지밖에 안 된다는 걸 인정한다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집에 가야 하는데 그날은 사실 술도 많이 안 마셨어요. 저는 기분 좋을 때만 술 마시지 기분 나쁘면 술 안 마셔요. 그날 술을 한 두 잔 마셨나? 그리고 집에 가야 하는데 집에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벙커 앞으로 해서 이화사거리 쪽으로 가서 한바퀴 돌았음에도 집에 못 가겠는 거예요.



- 지금 또 우시려고 그런다. (웃음)


 그러니까요. 그게 일요일이었나, 월요일이었나?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세상에 나 혼자 버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눈물이 막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주체가 안 되는 거예요. 누구한테 얘기할 수도 없고,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덩치도 큰 놈이 울고 자빠져 있네' 했겠지요. (웃음) 그때 너무 속상했어요. 그런데 매번 공연할 때마다 그런 것 같아요. 한 작품을 올림에 있어서요. '금 나와라 뚝딱' 해서 작품이 뚝딱 나오는 게 아니에요. 모든 창작 작품, 아니 창작 작품뿐만 아니죠. 공연을 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이 피 토하고 난리 블루스를 추다가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작품을 올리고 나서도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 공연하고 끝나고 연습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모여 연습하고 또 공연하고…. 이 수많은 과정을 겪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나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건 작품 밖에 없어요. 그 과정 속에서 내 치부가 다 드러난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벌거벗는 느낌이에요. 그걸 이제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힘들어요.

 


- 그렇죠. 너무 어렵죠.

 그런데도 어떤 공연을 할 생각을 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요. 갑자기 신이 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뭘 할 수 있을까' 그래요. 그리고 여행을 간다는 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거잖아요. 그건 우와….



- 사실 전석호 씨는 편한 길로 갈 수 있었는데 왜 안 갔나요?


 글쎄요. 아무도 안 가르쳐 준 것 같아요.



- 왜 그랬을까요. 미웠나? 하하하.


 XX, 누구야! 하하하.



-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있었고.


 그렇죠. 더 많이 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 과거 짤방이 많아서 '기회는 많았겠구나'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군가가 정석이 이거라고 이야기해줬던 것 같아요.



- 그 누군가가 누군가요?


 학교 선배들이죠. 교수님들이고. 사실은 이런 관심이나 인터뷰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어요. 



- 몇 살 정도 예상하셨는데요?


 한 서른셋?



- 지금이 딱 좋아요.


 그때 되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왔죠. 그런데 선배고 교수님이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멋 부리지 말고 연기하고,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연기하라고요. 모델일, CF 그런 것도 좋지만 연기하라고, 연기에 집중하라고요. 연극하고 많이 배우라고요. 그때 딱 마음먹었어요. 서른살까지는 대학로에서 살자.



- 이제 서른 넘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와보니까 잘하는 사람이 되게 많더라고요. 서른셋까지 살자. (웃음)



- 그나저나 CF 섭외 들어왔다면서요? 통신사라고 소문 났던데. (디시 이용자 'ㅇㅇ')


 이번에요? 아뇨. 예전이죠. 그건.



- 이번에 들어온 건요?


 식품이요. 찍었어요. 그런데 그게 TV에 나오는 게 아니라 유튜브 같은 영상 클릭하면 앞에 잠깐 광고 영상 뜨잖아요? 그거라고 하더라고요.



- 왠지 CF 섭외는 대리 분들이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저는 뭐… 연락이… 스케줄이 없는데요? 그런데 나보다 더 없는 형이 지금 유대리. 하하하. 뭐 하나 있어야 하는데.



- 이런 질문해도 되나?


 그럼 안 하는 걸로. 하하하.



- 다른 인터뷰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요. 왜 배우가 되려고 했나요? (디시 이용자 '14.48')


 아… 음… 부모님 영향이 되게 큰 것 같아요. 부모님은 전혀 이쪽 일을 안 하시는 분들인데, 어렸을 때 영화나 이런 걸 엄청 많이 보여주셨어요. 주말 되면 항상 아버지와 같이 토요 영화 봤죠. 저희 아버지께서 자영업을 하시는데 자영업자들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되게 들쑥날쑥하잖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12시에 자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아빠 올 때만을 기다리니까요. 아빠가 붕어빵도 사 오고, 군고구마도 사 오시고, 여름에는 빙수도 사 오고 그러시니까요. 항상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예전에는 비디오 가게라는 게 있었어요. 비디오 대여해주는. 아버지는 항상 비디오를 빌려오세요. 그래서 어렸을 때 밤에 만날 비디오만 봤어요.



- 뭐가 제일 재밌었어요?


 제 인생을, 나를 흔들어 놨던 건 '쇼생크 탈출'이요. 원래 원작이 소설이에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라는 소설인데, 팀 로빈스가 사라지고 나서 교도관이 감방에 들어와요. '어딨어!' 하면서 찾다가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그렇다면 이 여자는 알고 있을 거 아냐' 하면서 포스터를 향해 돌을 던져요. 그 포스터 여자가 리타 헤이워드예요. 돌을 던졌는데 거기 구멍이 딱 뚫리는 거예요. 그걸 보는데 '뭐지?' 싶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세상이 가져다준 첫 번째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아, 장난 아니다. 나도 이런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메리칸 히스토리 X'라는 영화를 보면서 에드워드 노튼이라는 배우를 보게 됐어요. 이건 뭐 연기가 깡패예요. 하하하. 제가 사실 삭발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게 있어요. 노튼이 거기서 삭발했는데 정~~ 말 멋있는 거예요.

 


- 그분은 잘생겼으니까. 하하하.


 그래~ 그렇지. 나는 꿈도 못 꾸나? 하하하. 와, 진짜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꿈이 이쪽으로 가고 있었죠. 그리고 엄마 친구분 들 중 세종문화회관에서 일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거기서 공연을 하면 보여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어렸을 때 백조의 호수를 10번 가까이 봤어요. 그 대작을. 호두까기 인형을 10번 가까이 봤어요. 초등학교 2학년 이럴 때. 그게 애한테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자는 거죠.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그런 대단한 작품을 보고 자란 거예요.



- 너무 후회되죠? 내가 그때 왜 잤을까. 하하하.


 그러니까요. (웃음) 그런 걸 봤어야 내 문화적 소양이 가득 찼을 텐데. 하하하. 그럴 때 제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가 빨리 왔었어요. 집안 환경도 그렇고… 빨리 선택해야 했었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라' 하신 게 정말 컸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가' 생각했던 게 중3, 고1 그때였던 것 같아요.



- 그럼 그때부터 아역 생활을 하신 건가요?


 지나니까 그게 아역이 됐네요. (웃음)



- 사실 그 나이 때 학생들은 주변 사람 중에 아역 배우가 있다면 많이 놀리죠. 연기를 따라 하든가 식으로.


 저는 그런 건 없었어요. 덩치가 크고 애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안 당하고 그래서요. 많이 싸운 것도 아닌데 애들이 잘 안 괴롭히더라고요.



- 게다가 그 시절에는 지금과 다르게 '연기 준비하는 애' 그러면 '헛바람 든 애' 이런 이미지가 있었어요.


 네. 그래서 사람들은 제가 연기하는지 몰랐어요. 친한 친구들은 알고 있었는데, 저 TV에 나와도 사람들에게 이야기 안 했어요.



- 그래도 애들은 어떻게든 알잖아요.


 그렇죠. 알죠. 하지만 제가 제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했어요. 이게 되게 위배되는 행위예요. 직업은 남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직업인데, 남에게 노출되는 걸 되게 꺼려하는 거예요. 사실 그런 고민도 많이 했어요. 나는 창작자인가 배우인가.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런데 배우도 창작을 할 수 있는 거고, 창작을 하는 사람도 배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괜찮아졌죠. 퍼센티지로 보자면 저는 창작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어떠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창작인 것과 마찬가지인데, 거기보다 조금 더 창작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아요.



- 방금 그 이야기를 들으니 '터키 블루스' 때 발가벗겨진 것 같다고 이야기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느낌이 이제 오네요.


 대사도 저희가 만들어내고 하다 보니까요.



- 젬베 치는 것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어요. 젬베 잘 치세요? (디시 이용자 'ㅇㅇ')


 저요? 잘은 아니지만 칠 줄 알아요. 배웠어요. 그리고 제가 그 악기를 되게 좋아해요. 리듬악기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리듬악기가 튀지 않아요. 뒤에 있으니까. 돌이켜서 나라는 사람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그런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남들은 기타를 멋있게 보잖아요. 그런데 저는 기타가 너무 화려하고 부끄러워요. 남들 앞에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젬베는 뒤에 있어요. 저도 공연 때는 항상 뒤에 있어요.



- 미생 콘서트가 열리면 젬베 공연할 건가요? (웃음) (디시 이용자 'ㅊㅊ')


 아뇨. 안 돼. 안 돼. 하하하. 너무 부끄러워요. 앞에 형들이 쫙 있으면, 보컬 있고 기타 있고 그러면 할게요. 그럼 뒤에 앉아서 하는 거죠.



- 오늘도 반팔 입고 오셨는데 원래 몸에 열이 많아요? (디시 이용자 'ㅇㅇ')


 네. 열이 많아요.



- 그럴 것 같아요. 성격을 보니까 열이 없으면 안 돼.


 그렇죠? 잘 한다! 하하하.



- 인터뷰 사진 왜 이상하게 찍으세요? (디시 이용자 'ㅇㅇ')


 하하하. 하트짤. 한 번 해달라고 하셔서. 개벽이도 벽에 한 번 서달라고 해서 '이렇게요?', '웃어요?' 그랬죠.

 

 

- 하필이면 그게 줌인, 줌아웃되었죠. 하하하.


 제가 얼마 전 김부장님, 종수형이랑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사진 찍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고요. 연기를 한다고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아니까 하겠어요. 그런데 사진을 찍으라고 하면 무슨 생각으로 여기 서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움직이지도 않고. 그러면 갑자기 제 몸이 굳어지면서 내가 엄청 수동적으로 변해요. 그렇게 능동적이고 시끄러웠던 사람이 되게 고분고분 해지면서 '앉아요' 그러면 '네'. '웃어요' 네. '하트 한 번 해주실래요?' 그럼 '이렇게요?' 그러고. '가까이요' 하면 '이렇게요?' 그러고. 막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저 수산시장 사진도 '자~ 옷을 벗으세요' 그래요. 제가 '반팔이라서…' 말하는 바람에 저거 입고 찍은 거예요. '옷 벗으시면' 그러기에 '추운데요?' 하니까 그럼 지퍼를 올리래요. 올렸더니 얼굴이 안 보인다고 열어달래요. 네. '저쪽 벽에'. 네. '고개를 내리셔야 하는데'. 네. '웃어요'. 네. '걸어와요'. 네. 아무 생각 없어요.



- 하하하. 미치겠다. 그래도 마지막 질문은 진지하게.


 아니, 뭘 이제 와서 진지하게 해요. 하하하.



- 배우 전석호의 연기 인생은 미생에 가깝습니까, 완생에 가깝습니까. (웃음) (디시 이용자 'crack')


 아이~ 미생이죠. 미생. 미생이라는 만화는 완결됐잖아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그 작품이 되게 희망적이게 끝났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은 다들 진화 중인 것 같아요. 계속 완생이 되기 위해서?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애벌레가 허물을 벗기 위해서 끊임없이 진화해 간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래요. 어제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해도 사실은 용된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배가 고파요. 더 나아가고 싶어요. 나아가고 싶다는 게 유명해진다는 게 아니에요. 사실 제가 연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거예요.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로 세상을 바꿨어요. 누군가는 세상을 계속 바꿔요. 저는 연기를 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것뿐이에요. 누군가에게 인기 얻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틀린 건 틀리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잘 한 사람은 잘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회 속에서 살고 싶어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연기를 하는 거예요.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더 잘 살 수도 있어요.

 

 저는 그들에게 애플(아이폰)을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당신들의 문화적 가치를 높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어요. 너희가 보고 싶은 걸 보여줄게. 그리고 너희의 문화적 양심을 채워줄게. 배부르게 해줄게. 이거죠. 저는 그래서 연기를 하는 거예요. 저 전에 인터뷰에서 죽을 때까지 연극을 계속하겠다고 했어요. 연극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파워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걸 따라올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 하긴, 연극은 가장 오래된 예술 장르 중 하나니까요.


 어릴 때 우리 모두 소꿉놀이를 하잖아요. 연극은 그때부터 시작인 거죠.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맡은 역할이 아빠인 거예요. 아들인 거고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재능기부도 해보고 싶어요. 문화 소외지역에 가서 아이들과 연말에 발표회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 개런티로 몇 억을 받아서 통장에 쌓아놓고 자식에게 준다? 그건 아니에요. 통장을 넓히는 게 제 삶을 살면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물론 제 가족을 굶게 하면 안 되겠지요. 하지만 적당한 선 내에서 그걸 채우면 뱉어내는 게 당연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 그럼 전석호 씨는 완생이 없다고 보시겠네요. 할 수도 없고요.


 그렇죠. 완생은 제가 할 수는 없는 거고, 제 밑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죠.



- 하하하. 왜요?


 제가 연기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저는 선배보다 잘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선배 따라가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에요. 배울 점은 많지만 내가 선배와 똑같이 가잖아요? 그럼 후배라는 게 왜 필요한가요? 세상을 발전시켜야 하는 게 내 목표이고, 내게 주어진 임무인데. 그러니까 선배는 나를 가르쳐주는 거고, 끌어주는 거겠지요. 그러지 않고 선배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계속 선배 뒤에만 있는 아이가 되는 거지요. 하지만 때로는 선배가 힘들 때 내가 앞서나갈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저는 완생은 못 되겠지요. 하지만 완생 가까이 진화를 했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럼 제 후배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완생 가까이 갔다고 생각하고 죽겠지요?



- 완생에 가까운 건 있지만 완생은 없다?


 네. 거기서 내가 얼마만큼 만족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느냐. 그런 것 같아요.



-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영상 인사말 남겨주세요.


 
 

  소속사 없이 활동하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그와 직접 통화를 해야 한다. 몇 차례의 전화 통화에서 그는 항상 조심스럽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낮고 작은 그의 목소리에 인터뷰 전 '아, 되게 조용하고 과묵한 분이신가 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아 정식으로 서로 인사할 때까지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생각은 오산이었다. 인터뷰 전 미생 갤러리에 올라온 자신의 패러디 기사 및 짤방을 보면서 마음을 푼 덕분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큰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저러다 목 쉬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데시벨 측정 기계가 있다면 아마 분명 높은 수치가 나왔을 것이다. 게다가 본인이 방청객 모드로 들어가 물개박수를 할 정도로 엄청난 언변의 소유자였으니. 그와 나눈 1시간 40분의 시간은 마치 30분도 안 될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본인의 말대로 전석호라는 배우는 십 몇 년 간 옆집에서 살던 동네 오빠, 동생을 만난 것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본인이 인터뷰 후 그와 나란히 섰을 때 "아, 아빠냄새 난다"라고 스스럼없이 장난을 쳐도 전혀 난감함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다. (물론 아빠냄새는 나지 않았음을 알려드린다)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았던 배우라는 사람이 사실은 우리와 삶을 공유하는 보통의 이웃임을 느끼게 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제 그가 출연했던 '조난자들'이라는 영화를 보려고 한다. 배우 전석호, 사람 전석호 모두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발견했으니 말이다.

 

  사진 = 김지원(kjwonee613@dcinside.com)



한수경기자 innuendo@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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